자, 새벽 한시가 되었으니 이런 글을 쓸 시간이 되었다. 사실 이 주제는 귀국하기 전에 이미 생각해 둔 것이다. 허나 귀국 전 시간이 허락치 않았기에 내일 개강을 앞둔, 한껏 잠들고싶지 않은 이 야밤에 한번 적어볼까 한다.

이번 여름방학 중에는 두달간 일본에 있었다. 도심지역이 아닌 조금 외진 곳에 있었는데, 이제 여름방학이 끝나가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처럼 지금까지 하지 못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 안에는 여러가지 내가 좋아하는 일상의 풍경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일본의 공중 목욕탕인 센토(銭湯)에 가는 것이다. 지금까지 여러 미디어에서만 접해본 시설이기에 조금 동경하고 있었다. 마침 내가 머물던 지역에는 ‘인간실격’으로 유명한 작가인 다자이 오사무가 자주 다니던 공중목욕탕이 있었기에, 그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일본의 목욕탕은 한국의 목욕탕과 다른 점이 많고, 굉장히 흥미롭지만 이 글에서 그 내용을 다루었다가는 하고싶던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되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 이야기를 하기로하겠다. 도착한 목욕탕은 작지만 조용하고 고즈넉한 목욕탕이었다.  나는 찜질방이나 크고 시설이 많은 스파와 같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데, 첫째로는 나는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질색을 하는 사람이고 둘째로는 내가 목욕탕을 가는 이유는 보통 순수하게 입욕을 하고싶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붐비지 않고 순수하게 탕만 있는 그런 목욕탕은 굉장히 좋은 공간이었다.

우선은 열탕에 몸을 담갔다. 조금 뜨겁지만 그렇기에 온 몸의 긴장이 풀리는 것 같은 기분좋음을 느끼었다. 옆에서는 아버지와 같이 온 어린아이들이 물이 뜨겁다고 칭얼대며 들어가는 것을 망설이고 있었는데, 굉장히 일상의 풍경이라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어느정도 몸을 충분히 담근 후에, 물로 가볍게 샤워를 하고 이번에는 온탕에 들어갔다. 온탕은 물의 온도가 오묘해서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기분좋은 온도였다. 영원히 몸을 담그고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온탕 바닥에 앉아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이 옛날 다자이 오사무가 보고있었던 그 풍경이겠구나. 물론 그 사람 소설은 읽어본 적도 없지만.’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래도 유명한 작가가 머물렀던 곳이니 나도 무언가 글감을 생각해볼까 하다가 한가지 주제를 떠올렸다. 이제 슬슬 그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나는 목욕을 좋아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때를 미는 것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조용한 분위기에서 탕에 몸을 담그는 것을 좋아한다. 이런 저런 일로 몸이 피로해지면 목욕탕 생각이 간절해진다. 4주 훈련을 다녀왔을 때도 그랬고 락페스티발을 다녀왔을 때도 그랬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면 어릴때부터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이 보통 격주로 목욕탕에 데려가 주셨는데, 뜨거운 물에 들어가는 것이 굉장히 싫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후로 청소년기에도 그다지 목욕을 좋아했던 적은 없었다. 내가 목욕을 좋아하게 된 것은 굉장히 최근이다. 아마 20대 초중반, 회사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하며, 왜 갑자기 목욕이 좋아지게 되었을까에 대한 생각을 하다보니 맥주 생각이 났다. 맥주를 마시고싶어졌다는 뜻이 아니라(물론 마시고싶었지만), 맥주도 비슷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이 마시던 맥주 캔을 잠깐 받아서 한모금 마셨던 적이 있는데, 이런 음료를 왜 마실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탄산감은 콜라와 같은 탄산음료에서도 느낄 수 있고, 심지어 탄산음료쪽이 훨씬 달콤하다. 맥주는 술으로써의 의미도 사실 약하다. 그런 맥주를 지금의 나는 정말정말 좋아한다. 아마 갑자기 전 세계에서 맥주가 사라진다면 진심으로 슬퍼할 것이다. 시간은 여러가지를 바꾼다고는 하지만, 대체 무엇이 나에게 있어 맥주에 대한 인식을 변하게 했을까?

그러다보니, 그런 것이 결국 인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글에서 촌스러움이 묻어나는 느낌이 들지만, 실제로 그렇게 생각했으니 어쩔 수 없다. 요는, 결국 살면서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조금씩 수용하게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수용하게 되는 계기는, 그것보다 더 쓰라린 경험을 해나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리고 피곤함을 잘 몰랐던 어린 나는 뜨거운 물에 몸을 담갔을 때 피곤이 풀리는 기분을 이해하지 못했다. 힘들었던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오늘도 이렇게 갔구나’ 생각하며 혼자 마시는 맥주캔의 맛을 어린 나는 이해하지 못했다. 인생이라는 것은 그러한, 이런 저런 것들을 경험하고, 또 새로운 것을 좋아하게 되는 그런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이것은 꽤 좋은 글감이 되겠다’라는 생각을 하며 목욕을 마치고, 과일향이 나는 우유를 한병 사서 마셨다. 딸기나 바나나향이 나는 단맛의 우유가 아닌 약간 시큼한 과즙의 향이 나는 우유라서 신선했다. 목욕 직후라서 그런지 여전히 땀이 조금 났다. 에어콘을 기대할 수 없는 오래된 공간이었기에 선풍기 앞에서 조금 몸을 식힌 후, 8월 말의 약간은 서늘한 저녁공기가 기다리고 있는 밖으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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